법을 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설령 마음이 흔들렸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남을 위하는 일을 애써서 하지 않는다. 남을 위해야지 애를 써서 남을 위하는 게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지 각오하는 게 아니고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면 남에게도 이익이 되고 세상에도 도움이 되고. 


어떻게 가야지 어느 길로 가야지 이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말이요. 남이 밭 메고 있으면 길가다가도 밭을 같이 메주고 다른 일이 있으면 일 좀 해달라는데 못 해주고 가니까 마음이 걸리거나 내 갈길 놔두고 가는 게 걸리거나 하는 게 없다. 


이렇게 살아야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잘 생각하면 메뚜기가 어떻게 살아야지 고민하고 살까 안하고 살까. 그러니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법을 알게 되면 삶이 자연스러운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이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그래서 고난을 겪더라도 그렇게 힘들고 억울하고 분하고 이런 일이 없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가파르면 힘이 드는 게 자연스러움이고, 가파를 수록 산에 빨리 올라갑니까 늦게 올라갑니까. 


가파르면 길이가 짧아지죠. 힘은 들지만 빨리 올라갑니다. 계곡을 따라 가면 수월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요. 계속 가팔라고 괜찮고 완만해도 괜찮고 완만하다 가팔라도 괜찮은 거요. 여러분이 만약에 모르는 게 많은 게 좋아요. 아는 게 많은 게 좋아요?


아는 게 많으면 자기 발전이 없고 모르는 게 많으면 자기발전이 있죠. 아는 게 많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쓰일 순 있어도 자기 발전은 없어요.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자꾸 알아져 가니까 자기 발전이 있죠. 어떤 일을 했을 때 실패했다가 좋아요 성공했다가 좋을까. 성공했다면 능력은 더이상 안 큽니다. 실패를 하면 성공시키기 위해서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하니까 능력이 커지죠. 


그러니까 이것도 좋은 거고 저것도 좋은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성공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능력이 안 커집니다. 성공하기를 좋아하는데 성공도 안되고 능력도 안 커지고 그래요. 그래서 이런 이치들을 알게 되면 삶이 나에게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생기든 저런 일이 생기든 다 좋은 일이다 이런 얘기요. 여러분이 삶이 조금 힘들면 시간이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아주 기분이 좋으면 시간이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힘든 세상에 살면 장수하고 좋은 세상에 살면 단명하는 거요. 시간은 같을 지 몰라도 주관적 시간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는 같은 시간인데 길어지기 때문에 단위 시간당 시간이 늘어납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는 주관적인 시간이 짧기 때문에 배울 여가가 없어요. 시간을 낭비하지. 명상을 하겠다고 죽비를 쳤어요. 잠깐 하고 눈뜨니 아침이요. 명상 잘했다는 게 아니라 시간만 죽인 거요. 


온갖 망상 다 피우고 이를 악 다물고 참기도 하고 몸부림 치다가 죽비 치는데 40분 밖에 안 걸렸어요. 그래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거요. 그래서 수행자는 어떤 것도 다 수행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이런 생각 안합니다. 그냥 닥치는 게 이러면 이래서 좋고 오르막이면 오르막이라 좋고 내리막이면 내리막이라 좋고. 내리막은 쉬워서 좋고 오르막은 운동되서 좋고. 할 일 없으면 휴식되서 좋고 할 일 많으면 능력이 늘어나서 좋고. 


그래서 그렇게 머리 안 굴려도 된다 이 말이요. 


제541회 스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자기 마음을 보셨나요? 중


행복하려고 자유로워 지려고 하다 더 불행해지고 더 속박받는다 


여러분들 10살짜리 어린애들이랑 비교해보면 누가 더 번뇌가 많습니까. 많아요. 누가 더 괴로움이 많아요? 누가 더 자유롭습니까? 그러면 어린애는 다 어린애 때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도 어른되봐라 자유로울 꺼다. 나도 어른되봐라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죠? 나도 어른이 되면, 나도 돈을 벌면 나도 지식을 쌓으면 나도 뭐가 되면 그때는 행복할 거다. 어린애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속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나도 그런 것들을 쌓으면 행복하고 자유로울 거다 했어요. 어린애들이랑 비교하면 지식이 많아졌어요 안 많아졌어요? 지위도 높아졌죠? 돈도 많아졌죠? 그런데 왜 안 행복해요? 도리어 번뇌도 많아지고 괴로움도 많아지고 속박도 왜 많아졌어요? 이게 뭔가 잘못된 거 모르겠어요? 아직도 정신 못차렸어요? 행복하기 위해서 자유롭기 위해서 몇십년을 애를 썼는데 본전도 못찾고 꺼꾸로 돼 있잖아요.  (중략)


이정도 됐으면 아 노름 안해야되겠구나 정신을 차려야지. 노름판에서 돈 잃은 사람 치고 본전 찾으려 하고. 본전 찾으려면 패가망신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출발할 때의 본전을 못찾고 있단 말이에요. 이 길이 잘못됐다는 걸 자각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길만 간단 말이에요. 이거를 점잖게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 뒤집어 꺼꾸로 됐다 이말이에요. 다른 말로는 무명, 무지 이렇게 말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쥐가 쥐약을 먹은 것과 같다.  


https://youtu.be/wssI6YiFE_Q

- 법륜스님 반야심경 2강 중 - 


자유로워 지려고 행복해지려고 더 지식을 쌓고 사업을 벌이고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 더 불행해지고 더 부자유해지고 더 망한다. 자승자박. 자기가 만든 업에 갇혀 자기를 더 옭아매는 짓을 한다. 구분하면 더 자유로워질 줄 알고 열심히 구분하는데, 끝은 속박이다. 

예를 든다면 내가 남편에게 집착을 한다. 자식에게 집착을 한다. 집착을 한다는 건 내뜻대로 되고 싶다는 거거든요. 내뜻대로 안되니까 어때요. 내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죠. 그러다가 집착을 놓으면, 내 뜻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놓아버리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요. 


처음 깨달음장 갔을 때 마음이 편안했던 것은 내가 집착하고 있던 것을 놔버렸다는 거요. 그런데 두번째 집에 가서 남편하고 자식하고 부딪히니까 또 내가 남편과 자식을 잡는단 말이에요. 이제 알았잖아요. 놓으면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경계에 부딪히면 또 잡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도 놔야 하는데 이렇게 되는 거에요. 놔야 되는데 현실은 잘 안 놔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또 내가 이 자신에 대해서 괴로워 하게 되는 거에요. 놔야 되는데 하는데 괴로워하는 것은 또 무슨 병일까? '놔야 되는데'에 또 집착하고 있다는 거요.  

"나쁜 환경이란 사실은 나를 가르치려는 주인공의 다른 모습이다. 환경 변화에 얽매이고 눌려서 평상심을 잃는 것이 환경 탓일 수 없고, 그런 변명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가르치려는 주인공의 배려요, 사랑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사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아니 지나칠 일도 있을 리 없지만, 역경계가 닥쳤을 때 공부하는 바가 더 많다. 그러므로 역경계가 닥치거든 공부의 기회로 알고 넘기도록 해야 한다. 넘기 힘든 고개가 넘고 나면 더 보람된 법이다. " 

-대행스님 -


역경계는 발돋움할 기회  - 선, 침묵의 천둥소리 2 -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中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죽음이라는 건요. 삶하고 조금도 다름이 없는 거에요. 불교 경전에서는 삶과 죽음을 여래장이라고 하는데 여래장. 여래는 진여법계, 우주실상인데. 진여법계, 우주실상이 창고같이, 창고가 밖의 물건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안의 물건이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창고는 입고, 출고. 입고는 창고안에 들여놓는 것. 출고는 나가는 거죠?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우주법계에 입고와 출고와 같다. 우주법계가 창고인데 삶이라는 것은 물건이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거고 죽음으리는 것은 창고에 있는 물건이 밖으로 나가는 거다. 창고라는 게 갖다 쌓이기만 하면 어떻게 되요. 나가고 들어오고 해야지. 그래서 생사를 여래장이라고 한 거에요. 승만경에서. 장은 창고다 말이에요. 그래가 태어난다는 거는 창고 안으로 물건이 들어오는 거고 죽음이라는 거는 창고 밖으로 물건이 나아간다. 그게 일상하는 일이요.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가고. 그걸 생사라고 그래요.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로 뭉치는 건데 다섯가지가 뭉쳤다고 해서 오온이라고 하잖아요. 죽음이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거에요. 인생은 돌아간다는 거다. 돌아간다고 생각해야 돼요. 돌아간다고 보면 뭐냐. 여빙기수. 얼음이 물로 돌아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물이 뭉친 거 아니에요. 얼음이 돌아가면 물로 돌아가잖아요. 얼음이 안 보일 뿐이지, 물로 돌아가면 엄청나게 넓어 지는 거잖아요. 어마어마한 물이 태평양이. 뭉쳐 있으면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한데 녹으면 온 하늘에 꽉 찰 수 있고,바다에 꽉 찰 수 있고. 굉장히 넓어지는 거거든요. 돌아가는 거에요. 돌아가는 인생이다. 몸은 돌아갈 곳이 있어요. 제사지낼 때 법문 중에 무상계라는 게 있는데. 죽으면 이 모발이, 땅으로 돌아가요. 온 땅이 내 몸이 되는 거에요. 요거 있을 때는 요거 뿐이지만 돌아가면 온땅이 내가 되는 건데요. 얼음덩이 하나가 바다가 될 수 있듯이. 얼마나 좋아.

그래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죽을 때 춤추고 노래하고 그랬어요.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다 돌아갈 때가 있어요. 이 몸의 수분은 물로 돌아갈 때가 있고 덩어리는 흙으로 돌아갈 때가 있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갈 때가 있고. 온 우주의 불이 내가 되는 거에요. 돌아가면. 숨쉬는 공기는 이제 바람으로 돌아간다. 우주의 공기가 내가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신이 몸 뒤에 뭐가 있냐. 몸 덩어리는 없는데 전체가 내가 된 거거든요. 세계에 있는 흙덩어리가 전체가 내 몸이고 세계의 물이 전체가 내 몸이고 따뜻한 기운이 전체가 내 몸이고, 공기가 전체가 내 몸이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살 때 사업과 성공에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누리다가 스스로 즐거운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



안양 선우정사 종범스님 초청법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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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전체가 된다는 생각. 붓다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분열해서 자신조차 허상의 나와 구분하는 현대인들로서는 꿈도 못 꿀 경지다. 









꿈을 가졌는데 초조하다면 뭘 말할까? 헛된 욕심이다. 내가 가야할 길은 저 멀리보는 방향, 희망이에요. 거기를 가기 위해서는 한발 한발 가야하는데, 마음이 한발 한발 가는 것을 무시하고 시간적으로나 거리적으로 마음이 앞으로 가버려. 그래서 마음에서 초조하고 답답한 게 생겨버려. 이건 욕심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이 갖는 희망이 있어.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원인지. 내가 중생을 구제하겠다. 고아원을 만들겠다. 그랬는데 그게 원입니까? 욕심입니까? 그건 마음이 괴롭거나 초조하거나 불안하면 그건 다 욕심이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비 현실적이 된다. 그게 원이면 어떠냐.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이 안 생겨.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가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가고, 다만 할 뿐이에요. 열번해서 안되면 스무번 하고 스무번 해서 안되면 백번 하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보살의 원에 그런 게 있잖아. 중생의 업이 다함이 없으므로 보살의 업도 다함이 없다. 


중생을 구제하겠다 이게 원이냐 욕심이냐. 우리는 대부분 욕심. 우리가 만약 지장보살이라서 지옥에 가서 건져내보자. 지가 잘못해서 지옥에 왔는데 인생이 불쌍해서 건져내왔다. 그런데 이게 또 그짓해서 또 기어 들어와. 세번만 그러면 우리같으면 저 새끼 빼라 안된다 이렇게 된다. 좋은 일도 지 뜻대로 안되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건 아니죠. 중생은 그런 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거란 말이에요. 보살은 그것을 보고 답답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불쌍하게 여기고 그래서 더욱더 내 할 일이 있는 거요. 그래서 원이 더 커진다는 거야. 중생의 업이 끝이 없으므로 내 원도 끝이 없다는 거에요. 


-제375회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화가 났을 때 중-

견성을 하려면 좋다 나쁘다. 온다 간다. 이런 업력이 녹아져야 견성을 합니다. 이걸 분별심이라고 하는데요. 이 분별심이 살아 있으면 견성 못해요. 왜 견성을 못하느냐. 분별심에 매달려가지고 제 생각에서 못 벗어나니까 견성을 못해요. 제 생각을 확 태워버려야 하는데 제 생각을 못 태우는 거에요. 그거 참 묘한 거에요. 


왜 견성을 못하는냐. 지 생각을 가지고 여기도 붙이고 저기도 붙이고 붙여요. 그래서 천만년이 지나가도 자기 업력에서 못 벗어나는 거에요. 백천만불이 세상에 출연해도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자기 방식으로 행동하는 걸 못 벗어나요. 이게 업력입니다. 아 불교라는 게 그게 그렇게 쉬운데, 자기 업력에 의해서 눈 감고 귀 막아서 이렇게 헛세월 보내는 구나. 이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mHx8HYab8&t=799s

종범스님 본성과 업력 중 


1. 남(본인 포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아라. 

2.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말아라. 

3. 남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지 말아라. 

4.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하지 말아라. 

5. 술을 인사불성되도록 먹지 말아라.(위 4가지 계율을 모두 어길 수 있으므로) 



위 다섯가지 계율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산다. 



늙어도 일법계 대총상, 어려도 일법계 대총상. 죽어도 일법계 대총상, 살아도 일법계 대총상. 그게 중생본성 원융원통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청산리 벽계수야'' 하면서 살든지 독야청청하리라 하면서 살든지 다 좋은 거에요. 독야청청 떠나서 청산리 벽계수가 있나요 없거든요. 다만 뭘하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나 분하다는 생각이나 속병걸리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정성스럽게 하면 되는 거에요. 정성이란 게 뭐냐. 빨리할 생각하지말고 원망하는 생각하지말고, 그냥 일심을 다해서 하되 자기가 필요한 거는 자기가 필요한 대로 쓰고, 나머지는 좋은 일하고 그게 보현이거든요. 그게 십불이에요. 그게 대인이거든요. 걱정을 많이 하는게 미혹이란 말이에요. 일법계 대총상을 모르니까 걱정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안 나왔으면 어찌됐을까. 어찌됐을까요? 그럼 나왔으면 어찌됐을까요? 그럼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어찌됐을까요? 이 안태어난 것하고 태어난 것하고 이게 격별성이거든요. 격별성, 다 다르죠? 그런데 이게 호상즉인거에요. 서로 서로 다 즉이란 건 연결돼 있다는 거에요. 안나왔을 때나 나왔을 때나 사라졌을 때나 호상즉인거에요. 


그럼 우리가 지난날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과거는 아무도 모르고 저 혼자만 알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과거가지고 후회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또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과거를 어떻게 해요 지금? 어제 저녁에 꿈을 꿨는데 꿈이 마음에 안든단 말이에요. 꿈을 뜯어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엊저녁 나의 꿈을 뜯어 고치고 싶다 어떻게 해야 돼요? 다시 꾼다구요? 그건 엊저녁 꿈이 아니고 오늘 꿈이죠. 


엊저녁 꿈을 고치고 싶다. 생각 안하면 되는 거에요. 꿈이란 건 생각 안하면 되는 거에요. 그러면 오늘이 이게 지나간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제 그저께가 어제의 어제거든요. 아 이거 어렵나 또. 어제 그저께가 있었잖아요. 어제 그저께가 어제에 있어서는 어제에요. 이게 호상즉이거든요. 그저께 어제 오늘이 다르지 이게 뒤섞인 게 아니거든요. 격별성이에요. 어제는 오늘의 어제거든요.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된단 말이에요. 내일의 어제. 그런데 지나간 건 다 머릿속에만 있기 떄문에 꿈인 거에요. 그럼 오늘도 내일가면 꿈이 되는 거거든요. 오늘 있던 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내일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어제했던 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오늘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되요? 어제는 고칠 수 없어요. 그저께도 고칠 수 없고. 그러면 오늘 고치려면 어떻게 되냐. 오늘은 내일의 어제니까 오늘 잘하면 그만이에요. 오늘 잘하면 그만이에요.  



종범스님, 중생본성 원융원통 중

구하는 한 있는 건 없거든요. 없는 것만 구하거든요. 구하는 한 있는 것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이거 다 있잖아요. 다른 걸 구하는 한 있는 것들은 의미가 없죠. 그런데 구하지 않는 한 이것도 있고 이것도 있고 다 있다. 없는 건 하나도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봐라. 보면 구할 것이 없다. 자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구합니다. 여기서는 여기를 안 보고 딴 걸 구해요. 딴 데 가서는 또 다른 걸 구하고 또 구하고. 맨날 떠돌이 나그네만 되지 정착을 못하거든요. 꽃을 보면 거기서 무궁무진한 신비의 세계를 볼 수 있는데. 작년에는 이 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 이렇게 지나가버려요. 이 꽃말고 다른 꽃은 더 이쁘지. 다른 꽃을 생각하는 순간 이 꽃은 의미가 없어요. 


종범스님 의존과 자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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