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윤재철




창의 창의 하지마라


책상앞에 앉아 머리만 굴리며


창의,창의 아이디어니 디자인이니 하지 마라.


 


창의도 눈물에서 나오는 것


허리 꺽어지도록 끝없는 반복에서


풀리지 않는 그 고통에서 나오는 것


 


어느날 에잇!


다 뒤짚어 엎고 싶을 때


그 끝에서 창의도 나오는 것


 


단지 양복 뒷면을 하나로 나누었다가


둘로 나누었다가 통으로 만드는 것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IT신기종


그것이 창의인가(아 참으로 가벼이 몸 바꿔 돈을 버는 자본주의여)


 


창의는 어느날


괭이날을 내리 찍다가


흙속에 파묻힌 바위에 부딪치다가


불꽃 튀듯 생겨나는 것


 힘의 반작용


그것이 문명의 바퀴를 덜컹 굴린다.


======================================================================================


게임 학원을 다니는 내내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문제의 복잡함과 크기에 비해 내 머릿속의 지식은 항상 부족하다. 그것을 추리하기 위해 이전 지식을 좇다보면 시간은 저 만치 도망가 있었다. 멀리 뻗어 나갔던 생각들은 점점 좁아진다. 문명에게 압도 당하는 것 같다. 수많은 쓸데없는 생각들과 놀이, 호기심들이 무너지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도구들이 너무도 복잡하다. 


지식, 새로움 앞에 당당한 인간 있겠는가. 어쩌면 투박한 시간들, 괴로운 시간들을 보낼 생각을 덜한 것 같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 이기와


이기와


그의 속은 공갈처럼 비어 있었다 

스프링도 스펀지도 안락을 제공할 그 어떤 

소재도 내장돼 있지 않았다 

바로크 문양의 유혹으로 겉치장을 했을 뿐 

속을 들춰보면 널빤지 하나뿐인 부실한 골격이 

내내 그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잘 깎인 무르팍에 앉아봐도 

그의 가슴에 내 가슴을 합체해봐도 

밤마다 몇 시간씩 부둥켜안고 서로를 탐색해봐도 

느껴지는 건 킹 사이즈의 허탈함뿐 

내 생의 삼분의 일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내 고절한 알몸을 통째로 상납하고도 

단 한 번도 푹신한 꿈을 대접받지 못했다 

날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졸음의 세계가 갈망한 건 

서로의 시장기를 보충시킬 육체였을 뿐 

탄력 있는 정신도 영구적 파트너도 아닌, 오직 

깨어날 수 없게 서로를 마취하는 몽상의 침구였을 뿐 

그의 관절 하나가 삐걱이기 시작한 것도 

그의 몸 중앙이 맥없이 꺼져들고 

내 욕망의 척추가 휘어져 고통이 시작된 것도 

수면을 위한 단순한 용도가 아닌 

그 외에 탁월한 용도로 서로를 탐미하려 했던 것 

그렇게 오용하지 않으면 순순히 잠들 수 없는 

워낙 속 재질이 부실한 싸구려 마네킹들이었던 것 


- 이기와 시집『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하늘호수, 2002)


============================================================================================


가구는 있지만 없지. 없을 때에나 있음을 알게 되는 물건. 겉은 화려하고 멀쩡한데 속은 썩어가는 사람, 사람들. '킹 사이즈의 허탈감'을 이기려 아둥바둥 창작의 프로세스를 돌려보는 나의 모습. 










몇 겹의 사랑


정 영


꼬리를 잘라내고 전진하는 도마뱀처럼

생은 툭툭 끊기며 간다

어떤 미련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끊어내고 

죽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럼이 없나


한 몸의 사랑이 떠나듯 나를 떠나 보내고

한 몸의 기억이 잊히듯 나를 지우고

한 내가 썩고 또 한 내가 문드러지는 동안

잘라낸 자리마다 파문 같은 골이 진다

이 흉터들은 영혼에 대한 몸의 조공일까


거울을 보면 몸을 바꾼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언가 잘려나간 자리만 가만가만 만져보는 것이다


심장이 꽃처럼 한 잎 한 잎 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이렇게 단단히 아프진 않을 텐데

몸을 갈아입으면 또 한 마음이 자라느라

저리는 곳이 많다


잘라내도 살아지는 생은 얼마나 진저리쳐지는지

수억 광년을 살다 터져버리는 별들은 모르지


흉터가 무늬가 되는 이 긴긴 시간 동안

난 또 어떤 사랑을 하려

어떤 벌을 받으려


몇 겹의 생을 빌려 입는 걸까


============================================================================


툭툭 끊기고 생은 나아가겠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이어지기도 했고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또 다시 별같은 욕망 마음 속에서 지어내고 업을 받고 살아간다. 













가을단상

고광헌

햇살이
살이 다 비치는
나뭇잎 위에 내려앉네
빛의 무게를 못 견딘 나뭇잎
까칠한 바람에 제 몸을 맡겨버리네

투명한 속살
겨우 걸음마 뗀 아이
떨어지는 나뭇잎 쫓아가는데
땅 위에 잠시 쉬고 있던 햇살
발소리에 놀라
냉큼,
나뭇가지 위로 달아나네

오,
생이 저처럼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있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는 대로 있는 것. 
가을의 한 일상이 언어를 만나 아름다운 이상향으로 태어난다.
생은 언제나 아름다웠던 걸까. 
좇는 게 많아 그 아름다움들이 보이지 않는다. 
뛰면 보이지 않는 것들. 
아름다운 생을 두고 저편만 바라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2018-09-07 오전 5:56

















서른일곱의 여름 


이재무


침목은 누워, 달리는 기차

하중을받는다 여름의 늦은 하오

부리지 못한, 칸칸마다 들어찬 끈끈한 욕망이여


기차가 지나간 뒤 

무엇이 남는가 아픈 사랑은

더디 왔다 빠르게 가고


침목 사이사이 떠나지도 못하면서

종종거리는 가녀린 풀잎들

염천 아래 헉헉헉 더운숨 쉰다


========================================================


누가 오고 누가 간다. 

뭐가 오고 뭐가 간다. 

시끄럽게 부산떨며 왔다가 조금 견디고 나면 사라진다. 

멀어 보였던 것들은 금방 오는 것들이었고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금방 가는 것들이었다. 


제목탓인가. 저 정도까지 먹지 않았지만 30대의 중반으로 다가가니 괜시리 더 저 시를 읽고 싶다. 

욕망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끈끈할 뿐. 불안하면서 권태롭다. 













 
괜찮아
 
한 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한 때 가까웠던 사람이 고민을 이야기할 때 왜 그런지를 주로 물었다.

처음에는 오히려 괜찮아라고 했다.

깊어질수록 나에게 어떤 해결책을 구하는 거라고 착각했다. 그냥 들어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왜그래는쓸데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남의 인생에 간섭할 수 없다.

괜찮아라며 어깨나 가슴을 빌려주고 사람을 보듬을 뿐이다.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유   안 진
어린이는
어른 아닌 어른의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입국 비자를 가진 완벽한 자격자
따라서 어른이 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데
어른이야말로 어린이가 되어야 할
어린이의 아들인데도

 

힘만 센 어른들은 어린이의 완전함을 구기고 때묻히며
자유로운 어린이를 틀 속에 쑤셔박아 찌부러뜨리며,
어린이는 미성년자라고,
미성년라를 성년자로 키우는 일이 어른의 사명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며 들며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한 어른으로 퇴행시키려 들며
어른의 아버지에게 어린이의 아들을 닮으라고 윽박지르는
교육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사업.

 

 

==========================================================

 

 

비루한 어른들을 완성이라고 본 걸까.

어린이들을 미성년이라고 부른다.

정작 미완성인 이들이 완성된 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나이가 든 우리들은 도리어 어린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낙타처럼 긴장해 있고 사자처럼 성내는 어른에서 어린이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본 책에서 어린이가 되는 단초를 찾았다. 결대로 사는 삶, 놀이로 사는 삶, 천명을 따르는 삶.

박하사탕 주인공처럼 외치고 싶다.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다.

 

 

/여기에 인간의 딜레마가 있다. 인간의 근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의식세계를 없애 버리면 당장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또 당장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을 강화하면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의식세계에서의 삶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본래세계에서의 자연적인 삶을 회복하여 이를 통합하는 것이다. /

 

<하늘의 뜻을 묻다/이기동>

 

 

 

 

 

 

 

 

 

 

 

 

 

 

 

 

 

 

 

 

 

 

 

 

 

 

 

 



캄캄절벽이 환하다

 

  채재순

 

 

아흔 노모의 귀는 캄캄절벽이다

친구 분과 맛나게 이야기 나누시길래

무슨 얘길 하셨냐니까

서로 제 얘길 했지 하신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는

캄캄절벽끼리의 말씀

벽 만드는 일이 없다

마주보며 웃는다

절벽끼리 말이 말랑말랑하다

서로 다른 말을 가지고서도

저토록 웃을 수 있는 천진난만

밀고 당기는 일 없는 캄캄절벽이 환하다

                                                                           

소금시 귀(2017년 소금시 앤솔로지)』 (2016)에서


-----------------------------------------------------------------------------------


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솔직히 다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공연히 다른 사람에게는 내 말 잘 이해안해주냐며 시비를 건다. 캄캄하게 귀가 막히자 오히려 잘 듣게 되는 묘한 이치. 가끔 왜 이리 답답한가 했더니 너무 밝히고 살려 해서 그런 것 같다. 무의미한 일들을 그리 밝히려 하니 도리어 캄캄해지나보다. 

 













피는 꽃


  한혜영


 


 


꽃이 핀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아


스스로의 생살을 찢는 것이지


그러니까 꽃나무의 고민은


몇 가닥으로 꽃 이파리를 찢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 외에는 없어


 


배우나 가수


아니래도 모두는 스스로를 찢어


의사, 변호사, 회계사, 목사 가릴 것 없이


조금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셀프 절개를 못하는 꽃들은


메스의 힘을 빌리러 가지


모가지 위에서 흔들리는


한 송이 어둠을 깨닫기까지


그림자는 언제나 뒤에서 따르는 법이거든


 


나도,


나를 무수히 찢어야 했어


실국화나 꽃무릇처럼 가닥가닥


튤립과에 속하는 것들은


알 리 만무한 고통이지만


천 갈래 만 갈래 나를 찢어서


시를 얻고 사랑을 얻었던 거지


 


꽃 피었다는 거?


별 거 아니야


그냥 너덜너덜하게 해진 거라고


 


 


- 계간 《인간과 문학》 2015년 봄호


   ------------------------------------------------------------------------------------------------------------------------------------------------------------



꽃 화(花)는 본래 빛날 화(華)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꽃이 이 시에서는 생살 찢는 고통이다. 


뭘 그렇게 찢어 대야 하는가. 의사 변호사 회계사란 직업을 칠하기 위해 찢어야 하는가.


신에게 나를 맡기려 찢어야 하는가. 


'천갈래 만갈래 나를 찢어서 시를 얻고 사랑을 얻'으면 뭐하나. 


화려한 시는 남았으나 너덜너덜해진 내가 남는다면...


찢어 내지 않으면 결국 메스를 찾게 되는가. 

 










손락천의 자신의 시에 대한 설명을 읽다 든 생각. 


참 세상은 재빠르다. 재빠르고 영리한 사람들로 넘쳐 난다. 나같은 잉여들은 그 가속을 도무지 감당하지 못한다.  



# 직선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넋 놓고 차창 밖을 내다본다. 전경과 배경이 구분되지 않는 파노라마적 풍경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 도무지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이 파노라마적 경험은 또 다른 심리학적 문제를 야기한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뭐가 불필요한지 헷갈리게 된다는 거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재빨리 여기서 저기로 가야 하기에 여기를 말하는 시도, 저기를 말하는 시도 읽지 못한다. 다들 보이는 것도 빠르게 잡아 먹기 바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시를 읽기 버겁다. 나같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비껴난 사람들만 시를 쑤시며 여기를 곱씹고 저기를 곱씹는 거다. 


시인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보며 생각했다. 부유한 시인이 나온다면? 부유한 피카소도 있는데 부유한 고흐는 안되는 걸까? 모르겠다. 그들의 텁텁함, 삶의 긴장들을 즙내서 시가 만들어 지는 거라면 시인이 부자가 될수록 세상은 허접스러워 질 것 같다. 반면 최진석 교수가 말한대로 시선의 높이가 한 단계 올라간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이 부자가 될 정도라면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줄 알고(보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사유하고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을 가진 국가가 되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