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대공황과 블랙스완  (0) 2019.01.06
억지스러운 교육의 폐해  (0) 2019.01.01
결과는 점, 과정은 선  (0) 2018.12.31
개선(改善)은 어렵다.  (0) 2018.10.23
모르는 건 해치워야 할 대상인가  (0) 2018.09.05
자족. 없어질 때만 드러나는 것들  (0) 2018.09.01



시간을 주자. 

어쩌면 그렇게 빨리 달려서 더 늦었는지도 모르니.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대공황과 블랙스완  (0) 2019.01.06
억지스러운 교육의 폐해  (0) 2019.01.01
결과는 점, 과정은 선  (0) 2018.12.31
개선(改善)은 어렵다.  (0) 2018.10.23
모르는 건 해치워야 할 대상인가  (0) 2018.09.05
자족. 없어질 때만 드러나는 것들  (0) 2018.09.01

결과는 확률적으로 나타나는 점이고 과정은 100% 꾸준히 만나야 하는 선. 현실적이란 말은 과정을 잘 다룬다는 의미이고 일을 좋아한다는 말은 매일 나타나는 과정을 좋아한다는 뜻일거다.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도 쪼개 보니 하기 싫은 것 투성이라면 그것을 추구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기 싫고 하기 좋고'는 또 언제 생긴 업인가. 계속 그 하기 싫은 것을 익숙할 수준으로 하다보면 '하기 좋고'가 되는 건가.


문명은 개념(concept)으로 겹겹히 쌓여 있으므로 단번에 파악 할 수 없다. 그 무한한 것을 유한한 인생으로 잡아 쥐려고(cept) 하니 피로하다. 결과와 같은 점은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반면 그 이미지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들을 밟아야 한다. 어쩌면 그 긴 선들은 해치워야할 장애물로 생각하고 이데아같은 결과만 붙잡고 살아서 그 과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 아닐까.


삶을 너무 프로젝트처럼 산 것 같다. 매일이 어떤 점을 위해 해치워야할 시간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삶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큰 그림을 지우고 작은 성취들을 만들며 살아가야겠다. 구체화시킬 수 없는 점은 가짜다. 가짜보다 진짜가 중요하다.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대공황과 블랙스완  (0) 2019.01.06
억지스러운 교육의 폐해  (0) 2019.01.01
결과는 점, 과정은 선  (0) 2018.12.31
개선(改善)은 어렵다.  (0) 2018.10.23
모르는 건 해치워야 할 대상인가  (0) 2018.09.05
자족. 없어질 때만 드러나는 것들  (0) 2018.09.01

하나를 개선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어보자. 

어떻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 언어들은 일상의 언어들이다. 

시장의 언어들, 컴퓨터 언어들은 그와 다르다. 

자신의 언어들을 다른 언어로 변환하기 위한 사고를 해야 한다.

그 사고가 연결되고 그것이 관찰로 확인되고 그것이 기록되어야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생각들은 리스크도 없고 장애물도 없는 관념들이다. 

그 관념들은 세상에 나와 현실에 영향을 미칠 때까지 온갖 것과 마주친다.  

그 교환의 과정을 피할 때 그 생각들은 머리 어딘가에서 사장된다. 


그 생각들이 현실과 맞닿았을 때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는 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때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그 생각이 현재의 문제와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문명에 사는 한 이 수많은 마주침과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포인터로 머리 쓰다가 든 생각

문제는 치워 버려야 할 대상일까. 불가에선 번뇌 즉 보리라고 한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오류가 곧 공부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는 게 문제다. 모르는 걸 해치워야 할 대상으로 본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모르고 오로지 결과만 바라보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우고 여태까지 살아왔으니 문제만 보면 그렇게 반응한다. 과정의 아름다움은 모른 채 결과만으로 승패를 따진다. 성공·실패, 0-1 오로지 1비트에 온 아날로그적 과정들을 빗댄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단박에 과정형 인간이 되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도 점점 그런 쪽으로 마음을 내 봐야겠다.


2018-09-05 




2018-09-01 오후 5:06

도덕경 보다 든 생각.

겨룸은 승패를 만든다.
의지는 되고 안됨을 만든다.
하고자 함은 하지 못함을 만든다.
채움은 비움의 없음이다.

나아가면 충돌을 만든다.
얻으려면 줘야 한다.
무형의 세계를 모아서 하나의 전략을 만든다.
전략은 극대화다.
얻으려고 했으니 얻지 못함과 얻음으로 갈린다.

뭘 하기는 쉬우나 뭘 안하기는 어렵다.
안 가진 것들을 발견하기는 쉽고 가진 것들을 소중히 하기는 어렵다.
욕망의 속도는 절대 마음보다 느릴 때가 없다.
욕망과 의지는 토끼고 만족은 거북이다.

자족과 욕망.
사람들은 욕망하라고 한다. 멈춰 있으면 움직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순간부터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일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성공과 실패가 따라 붙는다.
일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편(便)은 불편이 된다.
거기에는 '더'와 '좀 더'만 있다.

지금 있는 것은 있지 않다.
그것이 없어질 때만 그게 존재한다.
그것은 마음 속에서만 있었다.
















게임 개발 5일차를 지나가니 여러가지 힘에 부치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알고리즘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자꾸 알고리즘을 공부하니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삼각함수 등 도형들과 벡터들을 만난 것도 아이러니다. 공부가 아니라 정말 게임을 만드는 기술에 필요하다고 하니 대충 건너 뛸 수도 없을 듯 하다. 꽤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보니 비교의식도 발동한다. 


왜 답답한가 생각해보니 역시 노력한 것보다 더 받으려는 욕심이 잔뜩 끼어 있었다. 못하는 이유는 그 전에 이와 관련된 노력을 안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와 관련된 노력들이 필요하게 됐다. 그 노력을 안하고 단계를 건너 뛰고 싶은데 안되니 화가 올라오는 거다. 참 어리석다. 


존재하지도 않는 최선들을 떠올리는 것도 스트레스만 부르고 있다. 국비지원과정 자체가 최선과는 거리가 먼 과정이다. 산업변화와 개인들의 욕구로 인해 직업 수요는 빠르게 바뀌는데  기업들이 신입을 뽑지 않으니 만든 훈련 과정이다. 태생부터가 개개인의 난이도에 따라 심도있는 수업을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거 다 따지고 만들었다면 또 여기서도 진입벽이 있었을 게 뻔하다. 


삶은 끊임없이 최선같은 차선을 찾는 과정같다. 트레이딩 전략으로 치면 최선의 전략은 만들 수 없다. 최선의 삶 또한 불가능하다. 최선의 길이 최악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개개인들은 최선같은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어쩔 때는 차악도 선택해야 한다. 최악은 피해야 하니까. 


수많은 진력빠지는 시간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180831



최근 게임 프로그래밍 좀 배워보겠다고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다 든 생각.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중학교 때 배웠던 삼각함수와 고등학교 수2에서 배웠던 벡터를 공부하고 있다. 유난히도 어려워했던 도형부분을 다시 하니 힘이 빠진다. 머릿속에 빠져 있는 부분들이 있는 상태에서 응용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든다. 힘이 드니 하기가 싫고 하기 싫으니 뭔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같다.

그리 큰 일이 아닌 것 같아 보였던 일도 이정도다. 대체 복잡하다고 하는 일들의 복잡성과 배경지식들을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상상이 안간다. 다들 회사 나와서 고작해야 치킨집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지식과 노하우의 복합체인 회사도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숙련성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지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 앞에 왜소할 수 밖에 없는 시대다.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늘어난다. 점점 평균으로 힘이 모이기 보다는 어느 쪽으로 쏠리는 힘이 강해지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 문명의 복잡성과 변화의 속도가 그것을 가속화하는 건 아닐까?




지식의 착각 中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보면 공저자의 딸 L과 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L은 무엇을 아는 지 모르는 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등생들이 대부분 이 능력이 높다고 합니다. 반면 S는 주제파악을 못하는 유형입니다.(뜨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할 줄 모릅니다. 이 책의 취지대로 이해하자면, 자신의 지식과 남의 지식을 잘 구분 못해서 착각을 하는 유형입니다.(제 에버노트 카테고리 생각하다가 또 뜨끔;)항상 머리속에서 저 너머를 생각합니다. 

전 이 부분을 보다가 기획이란 게 S와 같은 마음가짐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 프로세스를 물 흐르듯 파악하고 그것이 세계와 조우했을 때를 정확히 알면 무엇을 만들겠다(하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바텀업 예측을 통해 살아 남을 만한 기획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리고 보통 그렇게 떠오른 것은 가장 자기가 여태까지 경험했던 것들과 비슷하고 진부한 생각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착각이 없으면 인간에게 대부분의 시도란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 S인 사람이 L와 같은 마음을 먹거나 적어도 L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생각이 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어느 팀에도 일을 자꾸 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기획은 착각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을 쓰려 했는데 쓰다보니 조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네요. 해당 책 읽다가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정원의 느룹나무 위에 매미가 있었는데 매미는 날개를 비비며 울면서 맑은 이슬을 마시려 했다가 사마귀가 뒤에서 목을 굽혀오는 걸 알지 못했다. '

동탁의 폭정으로 시작됐던 삼국 드라마가 사마의의 죽음으로 끝났다. 오랜만에 삼국지를 봐서 그런 지, 삶이 전쟁처럼 퍽퍽해서 그런 지 몰라도 매우 재밌게 봤다. 손자병법 강의를 보고 봐서 그런 지 더욱 그들의 처지 하나하나가 이해됐다. 

오랜만에 다시봐도 참 허망한 결말이다. 조조-유비-손권 이라는 영웅들의 싸움은 어디가고 천하 패권은 사마의 가문이 잡았다. 장자의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捕蟬 黃雀在後)고사대로다. 다들 천하통일이라는 눈 앞의 이익, 위-촉-오라는 적과 싸웠지만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었다. 한에서 부서지고 나뉘어 다시 합쳐진다면 그 수많은 죽음들은 왜 필요했던가. 수증기가 얼음이 되는 과정처럼 덧 없어 보였다. 

@적이 뭘까. 경쟁이 뭘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적이 과연 뭘까라는 물음이 절로 올라왔다. 극중 사마의는 제갈공명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만약 고도의 책략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조씨 가문에서 그를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지만 그 적이 있기에 자신의 가치와 기회가 있다. 적은 가장 조심해야할 상대지만 가장 필요한 친구이기도 하다. 

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곱씹어 봤다. 적벽대전에서 나오는 주유는 제갈공명에게 콤플렉스를 가진다. 그래서 감정 섞인 무리한 공격을 하고 동맹을 해친다. 그를 미워하기 때문에 감정이 섞이게 되고, 감정이 섞이니 무리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분해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반면 삼국지에서 조금이나마 큰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다 적에게서 배움을 구하는 이들이다. 조조는 모든 전투에서 적을 배우는 영웅이다. 사마의도 조조의 인내심을 배운다. 적의 강점을 배우고 적을 존경하기 때문에 더 큰 포부를 쳘칠 수 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주유와 같이 적을 대했던 것 같다.(주유는 천재적 능력이라도 있지...)더 잘하는 이를 처음부터 적으로 보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더 나아갈 힘을 기르지 못한다. 경쟁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잘못돼 있는 것이다. 

@인욕이 큰 일의 기본. 

인욕이 큰 일의 기본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드라마를 보면 유비는 나이 오십이 다 돼서도 제대로 된 주둔지 하나 못 구했다고 괴로워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 나이까지도 뜻을 굽히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의도 그렇다. 조조가 처음 그를 의심할 때부터 조씨 집안의 왕을 세번 섬기는 동안 온갖 박해를 받을 때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칼을 한번 휘둘렀지만 십수년간 칼을 갈았다'고 할 만 하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참지 않아서 패전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때를 알아야 한다. 
인욕을 하려면 주변상황을 기민하게 알아 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참는 게 아닌 것 같다. 원술은 괜히 황제가 됐다가 제후들의 미움을 사서 몰락한다. 조조는 한황실의 몰락을 알았지만 동탁과 원술의 사례를 보고 승상에 머문다. 유방이 진시황의 몰락을 보고 각지의 지방세력을 이용한 것과 비슷한 듯 하다. 때를 모르고 덤비면 필패한다. 

@간교함을 가지되 뜻을 잃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간교함이 어쩌면 난세를 헤쳐가는 기본적 기술이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간교함을 간파하려면 그 간교함을 넘어서는 간교함이 있어야 한다. 주역에서도 상괘에서는 예의를 따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하괘에 가서야 예의를 따진다. 비인(非人), 사람 아닌 사람, 싸이코패스들과는 예의를 따져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인의를 다하면 재앙이 몰려온다. 

반면 뜻을 잃어서도 안되는 듯 하다. 모든 삶이 생존경쟁으로 점철돼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피곤한가. 뜻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마음안에 선한 뜻은 계속 품고 있어야 하는 듯 하다. 난세라지만 오히려 난세라서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