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고통은 현재 이루어진다"


큰 스님 법어 중에 그런 게 있어요. 미래의 고통은 현재 이루어진다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편안하게 앉아서 들으시니까 흔한 말같죠. 

이것만 제대로 새겨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미래의 고통을 현재 예방하면 된다는 거에요. 

이게 인과고 생활이거든요. 


종범스님 - 삶의 기쁨 중 


열심히 좋은 공덕을 닦으면 마음이 좋아지는 거에요.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한 사람 마음하고 한 시간 동안 싸움을 한 사람 마음하고 어떠냐 이거죠. 분명히 다르거든요. 한 시간 대판 싸운 사람 생각하고 한 시간 기도한 사람 생각하고 달라요. 왜? 업이 달랐기 때문에. 많은 세월에 의해 쌓여서 생긴 생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 힘들어요. 이걸 업력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쌓인 건데 하루 아침에 죽음이 생각이다 해봤자 통하지 않아요. 


-종범스님 법문 - 관념과 지혜 중


그런데 이것도 깊이 들어가면 다 통하게 돼 있어요. 복(福)행을 닦는 속에 정(正)행과 원(願)행이 다 있고 정행을 닦는 속에 이제 복행과 원행이 있고 원행 속에 복행과 정행이 다 있고 이것이 불교입니다. 다 인연법이기 때문에 이래요. 그래서 불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불교를 만났으니까. 항상 복을 닦고 마음을 닦고 많은 사람이 불교와 인연을 만나서 역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인연을 짓고, 이런 실천을 하도록 항상 노력하는게 그게 참다운 불자입니다. 


-종범스님 법문-불자의 수행

출처: 안양 선우정사 종범스님 초청법문


평상심 

평등이라는 평자하고 항상이라는 상자하고 평상심이라. 

평상심이라는 말은 다른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에요. 

그것뿐인 거에요. 

평등해요. 그거하고 다른 게 없어요. 

차별이 없어요. 

죽는 거와 사는 거 오는 거 가는 거. 다 평등해요. 

그리고 항상해요. 

과거가 다르고 현재가 다르고 미래가 다른 게 아니라 과거 미래 현재가 항상해요. 

왜 범부가 괴로우냐하면 서로 달라서 괴로워요. 

센 사람 약한 사람 다르고 잘난 사람하고 못난 사람하고 다르고 

다 달라서. 그게 미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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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나누고 또 나눈다. 배워서 나누고 보고 나누고 감정 나온대로 나눈다. 

그렇게 매번 나누고 나니 자신도 나눈다. 

좋은 나, 나쁜 나, 이상의 나, 현재의 나를 매번 나눈다. 

내가 괴로운 이유를 또 하나 배워 간다. 


왜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건가요? 중


질문자: 

저는 생활을 하다보면 문득 스님 말씀 중에 

남을 위하는 길이 왜 자신을 위한 길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남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은 저에게

스님의 말씀이 제가 생활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질문드립니다


스님: 

예를 들어볼게요. 꽃을 보고 "야 꽃이 예쁘다"하면 꽃이 좋아요 여러분이 좋아요. 


질문자 : 자기가 좋습니다. 

스님: 꽃이 좋아야지 왜 자기가 좋아? 

꽃 예쁘다 칭찬해주면 꽃이 좋아야 안되나? 

꽃이 뭐 이렇게 생겼어 하면 꽃이 나쁘나 내가 나쁘나?


질문자: 내가 나쁩니다. 


남을 잘봐주면 그 사람 좋은 사람이구나 이런 마음을 내면 누구한테 이익이라고 나한테 이익. 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러면 자기 마음이 불편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죠? 



니도 나도 사랑하라 이거요. 저 사람이 나를 사랑 안하니까 미워지는 거요. 미움은 사랑하니까 미워지는 게 아니라 사랑 받으려 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긴다. 남편이 미운 건 내가 사랑 안해서 그래요. 물론 여러분들은 사랑 안하는 이유가 있겠지. 니가 사랑 안하는데 내가 어떻게 사랑하나 이런 이유죠. 


어쨌든 심리현상은 사랑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어요. 사랑받으려고 하는 이것이 뜻대로 안될 때 괴로움이 생기고 슬픔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그래. 그런데 산이나 바다를 좋아할 때는 내가 좋아하니까 니도 좋아해라라는 대가성이 없잖습니까. 아무리 산을 좋아해도 부작용이 없고 아무리 바다를 좋아해도 부작용이 없고 아무리 꽃을 좋아해도 부작용이 없는 거요.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느냐. 내가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해야하지 않느냐. 거래를 하려고 그래. 거래. 장사를 하려고 그런단 말이요. 내가 이렇게 좋아했는데 상대는 안그래. 내가 손해야. 그래서 미워지는 거요. 그러니까 이 적자라는 것, 손해라는 게 뭐냐?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손해 계산이 나온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 미움의 씨앗 그런 말 하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지는 거 아니에요. 사랑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워지는 거요. 우리는 사랑 하지도 않고 사랑 받으려고 그래. 주지도 않고 받으려고 그래. 


그런데 이건 못 받을 때, 이건 완전히 엉터리지만 자기가 한 것도 없으니까 부작용이 적은데 내가 널 사랑했다 하면 안하고도 받으려고 했는데 했으니까 받아야 되나 안 받아야 되나. 받아야 돼. 이건 그래서 부작용이 굉장히 큰 거요. 


그래서 난 누가 나 좋다고 하면 겁이 나는 거요.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나 스님 좋아요. 하면 스님 도망가요. 왜 ?  내 좋아한 만큼 내놔라 하고 칼 들고 나올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좋아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좋아하는데서 생기는게 아니에요. 거래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에요. 좋아하는 만큼 너도 나 좋아해라. 요구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다. 이해는 되요? 


그런데 여러분이 사랑하려고 그래요 받으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괴로운거요.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에게 달라고 그래요 베풀라고 그래요? 달라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괴로움에서 영원히 못 벗어나고.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은 달라는 사람밖에 안 만나잖아.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데 그 분들은 괴롭지가 않잖아. (중략)


우리가 뭐든지 베풀려는 마음을 내면 부작용이 없어요. 

그래서 베풀지도 않고 받으려고 하는 건 범부 중생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 괴로울 수 밖에 없고

베풀어서 이자 붙여서 받으려고 하는 게 이게 현명한 사람 

베풀고 받으려니까 이건 투자를 한 거니까 성공확률이 높지만은 

이거는 안됐을 때 부작용이 더 큽니다. 

세번째 성인은 뭐냐 베풀되 받으려는 생각이 없다. 

베풀되 사랑받을 생각, 베풀되 받으려는 생각이 없다. 

이건 아무 부작용이 없다. 성인은 미움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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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피곤한 이유를 알겠다. 문명에게는 항상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명을 꽃이나 산처럼 본다면 뒤탈이 있을까? 






























법을 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설령 마음이 흔들렸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남을 위하는 일을 애써서 하지 않는다. 남을 위해야지 애를 써서 남을 위하는 게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지 각오하는 게 아니고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면 남에게도 이익이 되고 세상에도 도움이 되고. 


어떻게 가야지 어느 길로 가야지 이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말이요. 남이 밭 메고 있으면 길가다가도 밭을 같이 메주고 다른 일이 있으면 일 좀 해달라는데 못 해주고 가니까 마음이 걸리거나 내 갈길 놔두고 가는 게 걸리거나 하는 게 없다. 


이렇게 살아야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잘 생각하면 메뚜기가 어떻게 살아야지 고민하고 살까 안하고 살까. 그러니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법을 알게 되면 삶이 자연스러운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이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그래서 고난을 겪더라도 그렇게 힘들고 억울하고 분하고 이런 일이 없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가파르면 힘이 드는 게 자연스러움이고, 가파를 수록 산에 빨리 올라갑니까 늦게 올라갑니까. 


가파르면 길이가 짧아지죠. 힘은 들지만 빨리 올라갑니다. 계곡을 따라 가면 수월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요. 계속 가팔라고 괜찮고 완만해도 괜찮고 완만하다 가팔라도 괜찮은 거요. 여러분이 만약에 모르는 게 많은 게 좋아요. 아는 게 많은 게 좋아요?


아는 게 많으면 자기 발전이 없고 모르는 게 많으면 자기발전이 있죠. 아는 게 많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쓰일 순 있어도 자기 발전은 없어요.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자꾸 알아져 가니까 자기 발전이 있죠. 어떤 일을 했을 때 실패했다가 좋아요 성공했다가 좋을까. 성공했다면 능력은 더이상 안 큽니다. 실패를 하면 성공시키기 위해서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하니까 능력이 커지죠. 


그러니까 이것도 좋은 거고 저것도 좋은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성공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능력이 안 커집니다. 성공하기를 좋아하는데 성공도 안되고 능력도 안 커지고 그래요. 그래서 이런 이치들을 알게 되면 삶이 나에게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생기든 저런 일이 생기든 다 좋은 일이다 이런 얘기요. 여러분이 삶이 조금 힘들면 시간이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아주 기분이 좋으면 시간이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힘든 세상에 살면 장수하고 좋은 세상에 살면 단명하는 거요. 시간은 같을 지 몰라도 주관적 시간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는 같은 시간인데 길어지기 때문에 단위 시간당 시간이 늘어납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는 주관적인 시간이 짧기 때문에 배울 여가가 없어요. 시간을 낭비하지. 명상을 하겠다고 죽비를 쳤어요. 잠깐 하고 눈뜨니 아침이요. 명상 잘했다는 게 아니라 시간만 죽인 거요. 


온갖 망상 다 피우고 이를 악 다물고 참기도 하고 몸부림 치다가 죽비 치는데 40분 밖에 안 걸렸어요. 그래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거요. 그래서 수행자는 어떤 것도 다 수행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이런 생각 안합니다. 그냥 닥치는 게 이러면 이래서 좋고 오르막이면 오르막이라 좋고 내리막이면 내리막이라 좋고. 내리막은 쉬워서 좋고 오르막은 운동되서 좋고. 할 일 없으면 휴식되서 좋고 할 일 많으면 능력이 늘어나서 좋고. 


그래서 그렇게 머리 안 굴려도 된다 이 말이요. 


제541회 스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자기 마음을 보셨나요? 중


행복하려고 자유로워 지려고 하다 더 불행해지고 더 속박받는다 


여러분들 10살짜리 어린애들이랑 비교해보면 누가 더 번뇌가 많습니까. 많아요. 누가 더 괴로움이 많아요? 누가 더 자유롭습니까? 그러면 어린애는 다 어린애 때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도 어른되봐라 자유로울 꺼다. 나도 어른되봐라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죠? 나도 어른이 되면, 나도 돈을 벌면 나도 지식을 쌓으면 나도 뭐가 되면 그때는 행복할 거다. 어린애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속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나도 그런 것들을 쌓으면 행복하고 자유로울 거다 했어요. 어린애들이랑 비교하면 지식이 많아졌어요 안 많아졌어요? 지위도 높아졌죠? 돈도 많아졌죠? 그런데 왜 안 행복해요? 도리어 번뇌도 많아지고 괴로움도 많아지고 속박도 왜 많아졌어요? 이게 뭔가 잘못된 거 모르겠어요? 아직도 정신 못차렸어요? 행복하기 위해서 자유롭기 위해서 몇십년을 애를 썼는데 본전도 못찾고 꺼꾸로 돼 있잖아요.  (중략)


이정도 됐으면 아 노름 안해야되겠구나 정신을 차려야지. 노름판에서 돈 잃은 사람 치고 본전 찾으려 하고. 본전 찾으려면 패가망신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출발할 때의 본전을 못찾고 있단 말이에요. 이 길이 잘못됐다는 걸 자각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길만 간단 말이에요. 이거를 점잖게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 뒤집어 꺼꾸로 됐다 이말이에요. 다른 말로는 무명, 무지 이렇게 말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쥐가 쥐약을 먹은 것과 같다.  


https://youtu.be/wssI6YiFE_Q

- 법륜스님 반야심경 2강 중 - 


자유로워 지려고 행복해지려고 더 지식을 쌓고 사업을 벌이고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 더 불행해지고 더 부자유해지고 더 망한다. 자승자박. 자기가 만든 업에 갇혀 자기를 더 옭아매는 짓을 한다. 구분하면 더 자유로워질 줄 알고 열심히 구분하는데, 끝은 속박이다. 

예를 든다면 내가 남편에게 집착을 한다. 자식에게 집착을 한다. 집착을 한다는 건 내뜻대로 되고 싶다는 거거든요. 내뜻대로 안되니까 어때요. 내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죠. 그러다가 집착을 놓으면, 내 뜻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놓아버리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요. 


처음 깨달음장 갔을 때 마음이 편안했던 것은 내가 집착하고 있던 것을 놔버렸다는 거요. 그런데 두번째 집에 가서 남편하고 자식하고 부딪히니까 또 내가 남편과 자식을 잡는단 말이에요. 이제 알았잖아요. 놓으면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경계에 부딪히면 또 잡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도 놔야 하는데 이렇게 되는 거에요. 놔야 되는데 현실은 잘 안 놔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또 내가 이 자신에 대해서 괴로워 하게 되는 거에요. 놔야 되는데 하는데 괴로워하는 것은 또 무슨 병일까? '놔야 되는데'에 또 집착하고 있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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